1.부자가 되고 싶나요?
마르크스는 가처분 시간이 실질적인 부라고 말해요.
돈이 많은 사람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진짜(실질적인)라고 말하는 거예요.
부의 척도는 어쨌든 이제 노동이 아니라 , 오히려 가처분 시간이다.
카를 마르크스<정치경제학 비판요강>
돈은 시간을 위한 수단
사람들이 돈(경제적인 부)를 원하는 이유는 상품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자유 시간(실질적인 부)을 갖고 싶어서예요.
돈이 없으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거예요.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죠.
하지만 숙명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요.
돈이 결코 우리의 자유 시간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에요.
돈은 무엇인가요?
돈은 시간을 얻기 위한 수단이에요.
내 삶을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 위한 수단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창조하고 정신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경제학-철학 사고>
2.진정한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삶에 따라 언어가 다르다.
언어는 일종의 게임이에요.
규칙을 공유해야만 할 수 있는 게임이죠.
그런데 규칙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에요.
같은 모국어를 쓰더라도 '그 언어(종이쪼가리, 보물)와 그 언어가 뒤얽혀 있는(책을 천시하거나 혹은 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활동 전체'에 따라 언어 규칙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즉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삶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이 의미하고 있는 거예요.
소통불가능 = 다툼과 무시
서로 다른 두 원리(서로 다른 언어 게임의 규칙)가 마주치게(대화하게)되면 그 끝은 다툼과 무시일 거예요.
진정한 대화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는 어느 한 개인의 삶의 맥락이 만들어 내는 언어예요.
누군가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먼저 섬세하게 상대의 삶의 맥락을 읽어 내어 그의 언어 규칙 속으로 들어가야만 해요.
우리는 자신의 언어 규칙에 집착할 뿐, 상대의 언어 규칙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내 삶의 맥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상대방의 삶의 맥락에 관심이 없잖아요.
각자의 언어 규칙이 있어서 당연하게 말을 하며 살죠.
하지만 그 규칙때문에 다른 사람과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어요.
그래서 다른 언어 규칙을 가진 친구들이 있는 거친 땅으로 돌아가야 하죠.
나와 다른 삶은 언제나 불편하고 불쾌한 거친 땅이에요.
하지만 그 거친 땅에서만 진정한 대화는 가능해요.
거친 땅의 마찰이 우리를 걷게 해 주니까 말이에요.
자신의 언어 규칙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타인의 언어 규칙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통해, 다툼과 포기 너머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거예요.